요코야마 미유키의 'AV배우는 행복하면 안되는가~!' <드라마/가요특집>




이웃 블로그님이신 옥탑방연구소장님의 '"AV"가 나의생활에 끼치는 영향.'의 갑작스러운 커밍아웃에 놀라 네이버를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왠걸? 어디선가 익숙한 이름의 AV 여배우의 이름이 각종 뉴스 사이트에 올라와 있더군요. 기사 제목들만 봐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쉽게 알수 있더군요.

그러나 역시 각 뉴스 사이트에서 올라온 기사의 제목들이 참.....

요코야마 미유키, AV 여배우 행복론 논란…소신발언 vs 패배자의 발악(한경닷컴 bnt뉴스)
패배자의 발악? 자기일에 프로의식을 갖고 일하는 배우의 소신 발언을 일부 여론의 소수의 의견에 따라 패배자의 발악이라.....

日 AV배우 요코야마 미유키 “포르노 배우는 행복할 수 없나요”(아츠뉴스)
대놓고 포르노 배우라는 원색적인 제목


이런 뉴스가 나돌고 있는 이유는 얼마전 요코야마 미유키가 본인의 블로그를 통해 "직업이 다를 뿐 같은 인간이다. 성인영화 여배우는 행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이해할 수 없다."라는 서두의 글을 올린 이후부터입니다. 또한 그녀는 "남이 내 행복을 결정할 수 없다. 행복은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상대방의 행복에 대한 언급은 스스로의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행동일 뿐이다."라며 세상의 시각에 대한 반감을 표현했죠.


이러한 글에 대해 일본의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그녀의 소신있는 발언에 대부분 긍정적인 댓글과 성원을 보낸반면, 일부 네티즌들은 패배자의 변명이라는 악플을 달기도 했다는 글들이 그녀의 다음날 블로그 포스트에 올라왔더군요.


자 그럼 이 소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참고로 저 역시 연구소장님처럼 AV를 보는 건강한 남성입니다. 제 주변의 친구들도 예전부터 보아왔고 그 친구의 친구들까지 거의 대다수의 남자분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AV에 세계에 입문하게 됩니다. 솔직히 저는 연구소장님처럼 주변 사람들, 특히 여성분들 앞에서는 당당하게 "나 AV 본다~~~"라고 대답할 용기는 없답니다. 그렇다고 창피해서 말을 안하는건 아니지요. 받아들이는 분들에 따라서는 성희롱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일본 AV물에 대해서 국내의 많은 분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이 있으니..... 예로부터 성적으로 개방적인 나라인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는 AV배우들도 일반 배우들처럼 떳떳한 직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을꺼라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해왔던 사람들 중 한명이지만요. 하지만 실제로는 일본 내에서도 같은 예능인인데도 불구하고 차별을 받고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요즘에야 AV 배우들 중에서 일반 예능계로 진출하며(연기자, 가수, 버라이어티 아이돌) 기존의 이미지에 비해 호감도가 상승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녀들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다는 말입니다.

솔직히 이번 요코야마 미유키 관련 기사가 국내에서 이렇게까지 크게 이슈가 되었던 이유가 바로 위와 같은 우리가 갖고 있었던 선입견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성개방국이자 성진국이라는 일본에서도 AV배우들이 차별을 받는다구? 이거 진짜야?"라는 놀라움 반, 가쉽거리 반이겠지요.

흔히들 알고있는 일본의 AV에는 셀계와 노모자이크 계통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일본 내에서도 합법적인 AV물에는 성기와 음모 등 중요한 부분에는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야 한다는 법규가 있습니다. 이러한 법규를 피하기 위해 노 모자이크 제작업체들은 제3국(미국등과 같은 성인물에 관대한 국가들)에 법인을 두고 있지요. 엄연히 따지자면 일본내 법적인 규제상으로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뿐더러 그들의 AV 시장이 전체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차지하는 비율은 상당합니다. 연구소장님의 말씀처럼 AV 전문 렌탈업소가 있으며 그 렌탈 수입만 하더라도 실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통 AV업계로 진출하는 공식은 이와 같습니다. 첫 단계인 그라비아 아이돌을 통해 인기를 끌게 된 소수의 그라돌들은 일반 연예계에 진출하여 텔런트 등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하지만 거의 대다수는 이 단계에서 은퇴를 할지 아니면 제 2의 시장인 AV계로 진출할지를 고심하게 되지요. 물론 그라비아 아이돌 시장에서 곧바로 AV로 진출하는 배우는 별로 없습니다. 일반 그라비아 아이돌의 다음 단계인 착에로 그라비아가 있습니다. AV업계로 진출하는 배우들의 거의 대다수가 이 착에로 그라비아를 통해 작품을 내고 곧이어 AV업계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착에로 그라비아란 그라비아와 AV의 중간이며 직접적인 성행위를 담지 않는, 그렇지만 그라비아보다는 과격한 영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라비아 아이돌에서 AV 배우로 전향하는 배우들은 단순히 돈이 되기 때문에 AV에 진출하는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AV계에서 전설이 되어버린 '오이카와 나오'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아마 AV에 대한 지식이 없는 분들이라면 이 여배우의 이름을 접해보지 못했을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일본의 유명 전대물 시리즈인 '염신전대 고온게'를 아는 분들이라면 누군지 대충 감이 잡힐꺼라 생각합니다. G3 프린세스라는 SP 유닛활동도 하며 이름을 알렸고 극중에서는 기계수 군단의 미워할수 없는 여악당 '카게레시아'를 연기며 주가를 올리기도 했죠.



이밖에도 AV 배우로는 유일무이하게 이름을 알리고 있는 아오이 소라 역시 AV계의 살아있는 레전드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들 역시 처음에는 일반 AV 여배우였지만 그녀들의 재능을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나, 유닛 활동, 성인 영화나 심야 드라마 등에 출연하며 일반 예능인으로의 진출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모든 후배 AV 여배우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뭐 전혀 다른 직업군이지만 국내에서도 레이싱 모델들의 연예게 진출 붐이 한동안 일어난 적과 비교한다면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닌듯 싶습니다.



이번과 같은 뉴스 보도는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전에 유명했던 여배우인 호노카에 대한 자서전이 출판됨과 함께 큰 충격을 일으켰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겠습니다.



1.가정 폭력과 성폭행, 그리고 원치않았던 AV배우로의 길
 
유년기의 호노카
호노카는 1982년 9월 2일, 카고시마 현에서 태어났습니다. 한 살 때부터 세 살 때까지 선천성 난치병을 앓고 있던 오빠의 간병에 임하고 있던 부모님을 떠나 미야자키현의 친척집에 맡겨졌습니다. 두살때 오빠가 타계한 후 곧 부모님이 이혼. 호노카는 어머니가 거두었습니다. 호노카의 어머니는 불철주야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호노카를 비롯한 형제들을 외할아버지가 돌보았다고 합니다. 형제는 호노카를 포함해 총 7명이 있었지만 호노카의 말에 따르면 연상의 형제들은 "몇년간 떨어져 있어서인지 대화 없이 지내는 다른 존제라고 할까요? 형제이지만 타인과도 같은 관계였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다만 연하의 동생들은 평범한 형제로 인식했다고 합니다.
 
호노카의 말을 빌리자면 당시 그녀의 어머니는 거액을 빚을 안고 있었고 남자 관계가 심해 소비자금융(우리나라말로 해석하자면 사채업이지요)의 징수원과도 교재 했다고 하네요. 다만 이 인간이 종종 호노카의 눈앞에서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두르자 그녀는 '머리카락을 당기며 고함치는 모습이 남자들에게는 일반적인 일'이라고 인식하게 됩니다.(참고로 그녀는 자신이 AV에 데뷔후 자신의 의지와는 정반대로 어머니의 애인에게 심한 가정 폭력을 받았다고 합니다) 결국 이 사람과의 교제로 인해 어머니에게 따로 격리 시키는 조치를 외할아버지가 했다고 합니다. 이후 아동복지시설에 맡겨진 그녀는 자신만을 봐줄 부모나 보호자도 없는 삶을 통해 자신의 자아를 찾기보다는 자신이 머물수 있는 '거주지'를 만들기 위해 어른들의 눈치를 볼 것과 자신을 보호할 수단, 제시된 환경에서 어떻게 적응해 나갈까에 대해 생각했다고 합니다.

유년기, 호노카는 어머니가 교제하고 있던 소비자금융징수원에서 운영하던 시설에서 생활을 하다가 한 사내로부터 납치당한적이 있다고 하네요. 여하튼 이 사람은 이상하리만큼 자신에게는 항상 밝은 이미지를 보여준 사람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갈망했기 때문에 의심을 품을일도 없었고, 오히려 처음 맛보는 자신을 24시간 내내 신경 써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와의 기억을 기뻐했다고 하네요. 이 문제의 사내는 전신에 문신을 하고 있었고 호노카는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남자들만 다니는 목욕탕에 데리고 다니자 그녀는 남자들은 모두 몸에 문신을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 후 그녀의 납치 사건을 경찰에 신고한 어머니로 인해 그 사내는 체포된 것으로 끝났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한테도 절대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가 2010년에 발행한 저서 '籠'에서는 그 남자와의 기억을 영화 '레옹'과도 같은 기억으로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저서 '籠'에서 유년기부터 15년간 약 9년동안 가정 내에서 성적인 학대를 당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성적 학대는 펠라치오 및 구강 사정 강요를 시작으로 강간 하려고까지 합니다. 그런 사실을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털어놓지만 어머니에게 묵살당하고 결국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반항적인 아이로 변해갑니다. 귀가를 늦추기위해 장시간 야외에 처하게 되는 벌을 받는 등 될 수 있는한 집에 들어가는 시간을 늦췄다고 하네요. 친구들과 어울린것도 집에 돌아가고싶지 않다는 생각에 친구와 있을수밖에 없다라는 것이 최대 동기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유년기의 성적 학대 경험이 연예계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빨리 어른이 되어 일하고 싶었다. 월급을 받아 혼자 살 수 있도록 되고 싶었다. 그래서 연예계를 갈망했다. 눈에 띄고 싶다라던가 찬란한 세계에 대한 동경이 아니다. 자신과 같은 나이의 아이가 돈을 벌수있는 세계. 부모가 없어도 생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만약 연예계에 데뷔한다면 지금 이 생활에서 벗어날, 지금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어린 내가 알 수 있는 정보 중 이 방법이 가장 현실적인 것 같았다. TV에 나올 수 있으면, 싫은 것을 모두 잊고 거듭날 수 있다는 생각을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싹튼 나의 첫 꿈이었다(호노카 자서전 '籠' 중에서)


고교시절의 호노카
집을 나올 목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합니다. 기숙사의 규율은 엄격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의 생활 환경을 겪으며 몸에 붙어있던 처세술 때문에 큰 문제없이 원만하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가정에서는 어머니가 의부로부터 이혼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집을 나왔던 시기입니다. 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모아둔 호노카는 리스트 컷(커터 칼 등으로 자신의 팔목을 긋는 자해 행위)을 하게 됩니다. 호노카는 커터 칼로 팔을 그으면 이상한 안도감, 어떤 면죄부를 얻는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이러한 행위는 곧 동급생들에게 발각되어 항상 그녀의 주변에 친구들이 감시하며 그녀의 이러한 행동을 막았다고 합니다. 당시의 심리 상태에 대해 호노카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습니다.

리스트 컷과 결별할 수 있었지만, 마음속에 갇힌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결국은 자신만이 해결할 수 없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일. 가족. 모처럼 얻은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데,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린다. 도대체 언제쯤이면....친구들에게 내 가정의 사정에 대해 말할수 없다. 사이가 좋은 친구들도 자신의 가정에 대해서는 말할수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옛날부터 학교는 집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장소도 사라졌다. 역시 아버지라는 존재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어디서 누구와 만난일까지 일일이 보고하지 않으면 안되는 날이 찾아왔다. 어쨌든 따를 수밖에 없었다.(호노카 자서전 '籠' 중에서)




대학 전공과를 자퇴 후 도쿄로 상경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한 그녀. 이것은 연예계에 대한 동경을 차단하기 위한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호노카는 고교 시절 장학금 혜택을 받으며 그 시절을 보냈습니다. 게다가 전공 학과에서도 혜택을 받으며 가정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졸업 후 5년간 병원에서 간호사 일을 시작했다. 호노카는 그때의 일을 돌아보며 "25살때까지는 정해진 길을 걷지 않으면 안될 일"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입학 후 곧 흡연 사실이 발각되어 근신 처분이 부과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반성문 제출을 요구했지만 근신기간 동안 모든 가사와 생활비 지출을 반환하는 명령을 받자 요구 금액의 절반밖에 반성문을 쓸 수 없게된 그녀는 장학금의 중단 및 고등학교 입학때부터의 학비와 기숙사비 약 800만엔의 대량 상환요구로인해 자퇴를 강요 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그녀의 의부에게로부터 "누군가에게 트럭이나 다른것에 치여 죽으면 돈이 들어올텐데"라는 말을 듣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의부의 말에 그녀는 심각하게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전공 과를 졸업 후 도쿄 도내의 병원에 근무하게 되며 전공 학과의 입학금을 제외한 모든 금액을 일괄 상환하지 않아도 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2001년 여름, 호노카는 병원의 정신과로 배속됩니다. 하지만 퇴학 경위를 알게된 동료들의 냉담한 태도로인해 또다시 리스트컷에 빠질뻔 했지만, 다음에 또 무언가 발견되어버리면 그때야말로 죽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그녀는 TV 프로그램의 엑스트라에 스카웃 당했다고 합니다. 한번쯤 포기했던 연예계가 문을 열어줘서 기뻐했다고 회상합니다. 하지만 스카우트 소식이 들려오자 애인이 '일을 그만두고 도쿄로 간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나를 속박하기 우해 도쿄로 온다. 장학금 상환 후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나에게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남자"라고 느끼며 이별을 결심합니다.


AV배우가 되다
2003년 업무에 능숙한 새로운 애인이 생깁니다. 호노카는 "지금까지의 인생중 가장 일반적으로 느끼는 행복을 가졌습니다"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독립한 지 얼마 안된 연예기획사 사장을 자칭하는 남자로부터 스카우트 됩니다. 호노카는 이 남자를 경계했지만 가수 지망생임을 말하고 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보냈는데 CD데뷔는 무리라는 이야기를 듣자 연예계 데뷔를 포기하지 못한 호노카는 잠시후 스스로 사무실에 연락하여 가수 이외의 데뷔를 허락하게 됩니다.
 
호노카의 말을 빌리자면 이때 수영복과 그라비아 쪽에서 데뷔를 타진해왔고 그 제의에 동의했는데 사무소측은 AV 데뷔를 수락해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호노카는 사무소 측에 AV에 데뷔하는 것을 거절했지만 당시 사무소 사장은 600만엔이라는 위약금을 내걸며 협박을 합니다. 보통의 사람들이었다면 이러한 부당한 협박에 법적으로 해결했겠지만 이미 호노카는 800만엔이라는 장학금 일괄 반환을 요구 당했을 때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 정상적인 판단을 할 겨를이 없었죠.

지금 생각하면 도망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충분히 달아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상담했더라도 AV 배우로 데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말뿐인 계약이었고 도장을 찍은 적도 없었기에 변호사를 고용했다면 사무소도 귀찮아서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스무 살에 적당히 시골에서 나온 개집 아이였다. 그때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호노카 자서전 '籠' 중에서)

원래 AV라는 것은 무척이나 바보로 취급당할 뿐 아니라 아무리 돈이 필요하다 하더라도 스스로 발을 디딜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세계...AV란 결국 단순한 SEX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여줄게 없는 것이다. 어째서 AV 따위가 세상에 존재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어떤 SEX를 하던지 간에 그것은 한 개인의 자유. 그것은 상대방과의 개인적인 SEX이지 구경거리가 아니다. AV는 낯선 사람을 위해 치러야 할 SEX...AV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단순히 돈을 벌려고 할 뿐이지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나는 경멸했다.

난 드디어 저속한 밑바닥까지 떨어졌구나라고 생각했다


첫 촬영을 마치고 귀가한 호노카는 "아쉬움과 자신에 대한 무력함, 자극...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을 어딘가에도 내뱉지 못하고.... 하룻밤 동안 계속 울었다"라고 합니다. 데뷔작이 발매되기 직전, 그녀는 자신의 연인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으며 나로 인해 그의 인생을 침몰 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와 이별을 고합니다. 다니던 병원도 집으로 돌아간다는 이유로 관두게 됩니다.
 
AV데뷔이후 최소 3개의 작품에 출연하며 300만엔을 벌면 CD를 자체 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레코드 회사의 담당자로부터 육체 관계가 요구되자 거절하자 CD 제작이 물 건너 갔다고 하네요. 이때 사무소 사장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음악이 팔리지 않는 시기에 들어와 있어요. 노래는 정말 유명해지면 언제든지 낼 수 있어요. 우선 AV에 열심히 노력해서 연예계를 목표로 잡아봅시다. 이이지마 아이씨의 예도 있고, 일단 한번 시작했으니 업계에서 최고가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이미 3작품을 찍었으니 앞으로 6개 작품까지 함께 노력합시다.(호노카 자서전 '籠' 중에서)

하지만 여섯번째 촬영이 끝난 후에도 촬영이 계속 들어오자 이상함을 느낀 그녀가 알아보니 처음부터 12개 작품을 촬영하기로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사실이 발각됩니다. 호노카는 격앙된 목소리로 AV일을 그만 두겠다며 "나머지 6개의 일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라고 묻자 마치 예전에 호노카에게 했던 이야기를 잊은 듯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고 하네요.

구두 계약이었기 때문에 계약해지 할 수도 있습니다.(호노카 자서전 '籠' 중에서)

우여곡절을 거쳐 호노카는 'AV 여배우 호노카'로서 이대로 끝낼 수 없다 라는 심경에 이르러 톱 여배우를 목표로 결심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이윽고 2007년 일본 성인 방송 대상 여배우 대상을 수상합니다. 이때 "나의 AV 인생이 겨우 끝났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AV여배우를 은퇴

2008년 12월, 호노카는 AV 은퇴를 선언합니다. 이때 사무소 사장에게 다음과 같은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여배우가 되고 싶은것은 잘 알지만 역시 걱정이 앞섭니다. 앞으로 정말 연예계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나에게는 한 여자의 인생을 망쳐버린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예계에 성공시켜야 한다는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습니다.(호노카 자서전 '籠' 중에서)


이러한 메일에 그녀는
확실히 당신(사장)말대로이다. 사장 덕분에 내 인생은 참 재미있게 흘러갔다. 앞으로도 이 과거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난 알고 있었다... AV는를 스스로 하기로 결심한 그날부터 오늘까지 당신이 여러번 반성했던 모습들을... 그래서 당신을 용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호노카 자서전 '籠' 중에서)


AV를 은퇴한 그녀는 여배우로 활동하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계기는 AV 은퇴 전에 출연한 단편 영화의 촬영감독이 "호노카 씨를 캐스팅하고 너무 좋았습니다"라고 전해 들은 이후라고 합니다.




위의 글들은 그녀의 자서전에 나온 이야기이며 실제로 AV 배우들 중에서 스스로 원해서 이 길을 걷는 사람은 거의 드물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그녀의 경우에는 연예계의 빛나는 모습과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정에서의 탈출을 위한 목적이었다는 점이 정말 충격적이었다는 점입니다. 부모님의 이혼과 납치경험, 게다가 의부에게 지속적인 성폭행까지 받은 그녀....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탈출할 수 있었던 기회가 바로 AV 배우로서의 길이었다니 참으로 인생이란 아이러니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분명 원해서 걸은 길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녀 스스로 이왕 시작한 AV 배우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면 이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 보이겠다는 결심이 결국 그녀를 AV 계의 여신으로 인식 시키는 것에 성공합니다.

그녀는 분명 아픈 과거를 안고 살아왔지만 스스로 그 아픔을 치유하고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길을 개척해가는 모습에서 AV 여배우가 아닌 하나의 여성으로서 분명 존경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요코야마 미유키 양의 블로그에 올린 글 역시 이와 같은 문맥입니다. 일반적인 남녀들의 AV 배우에 대한 고정관념은 단순한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녀들을 나락으로 빠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저 역시 이와 같은 글을 작성하게 됐네요.

이번 일은 단순히 그녀의 의견을 지지한다라거나 또는 그녀를 비난하는 것을 떠나서 그녀들도 하나의 인간으로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하는 직업인으로 인정해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찌 보면 성에 문란하다고 항상 말하는 일본이라는 나라.... 솔직히 요즘 국내 성 관련 뉴스들을 보게 되면 이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그녀들의 작품으로 위로 받는 대다수의 남성 분들은 이러한 그녀의 발언에 과연 비판의 날을 세울 수 있는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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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옥탑방연구소장 2012/01/08 22:59 #

    확실히,,,저보다 많이 아시네요 ㅋㅋㅋ
    아그리고,,당당하게 말하는정도는 아니구 ㅋㅋㅋㅋ
    물어보는 이성친구들이 있더군요...그럴때 아무렇지않게 말하는거입니다 ^^ ㅋㅋ
  • fridia 2012/01/08 23:05 #

    휴~ 전 그래도 이성친구들이 물어보면 딱히 대답하기가 그렇더라구요. 그나저나 아는 지인중에는 일부러 자기가 먼저 나 이거 봤는데 죽여줘.....라는 식의.....
    그럴때마다 그녀석 뒷통수를 가격하는게 저의 일이랍니다....
  • 옥탑방연구소장 2012/01/08 23:00 #

    머 뻔한 사실인데,, 다 보는걸 , 다하는걸 조신한척 숨기는 게 참 이상한거같습니다...
    이런걸 커밍아웃이라고 하기에는 ㅋㅋㅋㅋ 머 , 제가 이상한건지ㅋㅋㅋ
  • fridia 2012/01/08 23:04 #

    이글루스에서 나름 유명인이신데 나 AV봐 라는걸 발표하신것과 같으니 말이죠..ㅎㅎㅎ
  • 옥탑방연구소장 2012/01/08 23:26 #

    ㅋㅋㅋ 발표까지,,제가 그렇게 영향력이 있었나요? ㅋㅋㅋ

    머 살짝고민하긴했는데,,왜냐면 언젠가는 제 모든걸 점점 공개할예정이라서 ㅋㅋ
    근데,,,머 제 블로그취지가 모든걸 리뷰하자는건데,,, 그냥 넘어가고싶지 않더라구요 ㅋㅋ
    그리고,,머 자연스러운 문화인데 ㅋㅋ특별한것도아니고 ㅋㅋ
    제 생각을 써봤어요 ㅋㅋ
  • 2012/01/08 23:0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fridia 2012/01/08 23:14 #

    해당 뉴스 사이트 댓글들이 아주 가관도 아니더라구요. 일부는 창녀와 다를바가 무엇이란 말이냐라는 식의 바하까지 서슴치 않더군요. 자기들 입으로는 행복은 상대적인건데 왜 이걸 굳이 블로그에 걸어놓고 남에게 주입시키냐라고 떠들지만 그러는 자신들은 SNS 뒤에 숨얼굴을 숨기고 남을 루저로 만드는 짓이나 하는 사람들 등등....

    그나저나 참 놀랐습니다. 그 두명의 이름까지 알고 계시다니요. ^^;;;
  • 김마리오 2012/01/09 00:40 #

    좋은 글 잘봤습니다.
    AV팬으로써 이런 전문적인 AV글을 읽는것은 항상 즐겁네요.
    AV계의 뒷이야기 이런거는 다루는 블로거분들이 잘 없어서ㅜ

    저는 전대물을 좋아해서
    오이카와 나오를 케가레시아로 먼저 알았는데.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유명한 배우 였나보네요.
  • fridia 2012/01/09 15:06 #

    그리 전문적이진 않습니다....^^;;;
    오이카와 나오가 일본내에서는 거의 전설이더라구요. AV 여배우가 일반 예능계에 진출한 성공적인 대표 케이스 중 하나라고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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